도마복음 단상

2011/11/15

북경출장동안 선생님의 “도마복음한글역주2″를 일독하였다. 사놓고 한동안 진도가 안 나갔던 1편을 출장직전에 일독완료한 탄력을 그대로 이어나갈 수 있었다.

아직 3권을 구하지 못한 상태이나, “도마복음한글역주” 씨리즈는 선생님의 저술중에서도 첫 손가락에 뽑힐 만큼 역작이 될 것 같다. 최소한 내 개인적인 견지에서는 그렇다. 1권의 중반을 넘어서는 그 어떤 신비주의 소설(대표적으로는 댄 브라운의 “다빈치코드”류)보다 흥미진진하게 역사적 예수와 초기 예수운동의 모습들이 밝혀진다. 본격적인 주해작업을 통해 도마복음의 모습이 드러나는 2권에서 받은 충격은 20대때 “운급칠첨” 서장을 읽으며 느꼈던 충격에 비할만하다.

이제는 정말 동/서양이라는 그릇된 프레임웍에서 진정으로 벗어날 수 있게 된 것 같다. 내가 싫어했던 것은 서양이 아니라, 종말론이었고 구세주사상이었다. 그것들은 서양의 전통이 아니라, 세계 여기저기에 다 있는 생각들이었다. 내가 원하는 길은 서양에 없고, 동양에 있던 것이 아니라, 그냥 내가 원하는 길이었을 뿐이다. 그 길을 걸었던, 또 걷고 있는 사람들은 동양에도 서양에도 있었다. 내가 걷기 싫어했던 생각들 역시 동양에도 있었고 서양에도 있었을 뿐이다.

“구하는 자는 찾을 때까지 구함을 그치지 말지어다. 찾았을 때 그는 고통스러우리라. 고통스러울 때 그는 경이로우리라. 그리하면 그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되리라.”

이 얼마나 위대한 말씀인가.

요새 생업에 관련되어 고민하게 되는 문제에도 맞닻아 있다. 구함을 그쳐선 안된다. 그런데, 막상 찾아도 무척 고통스러울 뿐이다. 하지만, 고통이 있어야 경이로울 수 있고 그제서야 모든 것을 다스릴 수 있게 된다. 무척이나 강한 고통을 느끼고 있는 지금 나에게 너무나도 큰 위로가 되는 말씀이다. 내가, 그리고 우리 회사가 고통스러운 것은 무척이나 다행스럽게도 계속 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마역주2에도 언급되어 있다시피 이 대목에서 백두선생님의 “이성의 기능”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세상에는 2가지 경향성이 있다. 끊임없이 쇠락하는 엔트로피의 증가과정과 진화의 상향이 예증해 주는 엔트로피 감소 과정이다.

경영적인 측면에서 생각해 보면, 전자는 모든 범용품(commodity)이 걸어가는 길이다. 제품으로서의 가치(=ASP)는 시간이 갈수록 떨어지고, 남는 것은 서로에게 피말리는 cost경쟁뿐이다. 기업에게 이 길은 사실 서서히 죽음으로 가는 길일뿐이다.

후자의 길을 만드는 것이 바로 혁신(innovation)이요, 혁명(revolution)이다. 범용품끼리의 눈에 보이는 경쟁을 거부하고, 진화를 통해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진입한다.

왜 우리는, 아니 대부분의 기업들은 혁신이 어려울까. 내가 보는 견지에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두려움”이다.

도마복음에서 이야기하는 “구함”에는 명백한 기존 가치에 대한 회의와 의심, 전복이 전제되어 있다. 전복을 꿈꾸는 자만이 끊임없이 구할 수 있다. 구하는 자가 일차적으로 극복해야 할 대상은 “남과 달라진다는 두려움”이다.

어떤 혁신적 제안도 무너뜨릴 수 있는 마법의 질문이 있다.

“아니면 어떻할래?”

많은 꿈들이 이 질문을 방어하기 위해 평범해 진다. 주어진 모든 리스크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다보면 어느새 혁신제품은 범용품으로 변해있다.

(비슷한 시리즈로는, “남들은 하는데 우린 없으면 어떻하지?”가 있다)

“…그 가득한 고기 가운데서 슬기로운 어부는 잘생긴 큰 고기 한마리를 발견하는도다. 그는 모든 작은 고기를 다시 바다속으로 던져 버린다. 그리고 어려움없이 그 큰 고기 한마리를 가려 얻는다…”

결국 진리는 버리는 자에게 주어진다. 가장 크고 잘생긴 고기하나를 알아보고, 그것을 가지기 위해 주변의 무수한 작은 고기를 버릴 줄 아는 자에게 주어진다. 혁신은 구하는 자의 몫이며, 그 구하는 과정에서 버리는 자의 것이다. 버리는 과정에서의 두려움을 극복한 자의 것이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오버랩 되는 것이 바로 애플의 철학이다.

“…우리는 가지고 있는 기능보다 포기한 기능에 더 자부심을 느낀다..”

이 발언이 얼마나 실현되기 어려운 명제인지..경험해 보지 않고선 이 발언의 위력을 절감할 수 없다.

정말 재미있는 건, 애플의 신제품이 발표될 때 마다 많은 비판가들이 애플이 버린 기능을 가지고 비난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지난 몇년 내내 그랬다. 한편으로 경쟁자들은, 그 버린 물고기를 들고와서는 “대항마”를 자처해 왔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애플이 버린 물고기보다는 애플이 건네는 “큰 고기”에 손을 들어줘 왔다.

(무려 2010년 5월 22일에 저장해 둔 글이다. 더 완성하긴 힘들 것 같아 이대로 올려둔다. 그러나 이 때 느꼈던 감동은 그대로 기억이 난다)

완성치 못한 어떤 이별에 대한 기록.

2010/05/23

사업부에서 그룹장님을 모시고 올라오던 길에 뜬금없이 물어보셨다.

“addict.아 우리 같이 일한지 얼마나 되었지?”

“에이 그룹장님 입사일부터 계산하면 되잖아요”

“그렇네..거의 일년 다 되어간다. 그지?”

우린 아직도 술자리에선 그룹장님의 입사 첫날을 이야기하곤 한다.

8월 중순의 어느날. 무척이나 비가 많이 오던 날이었다. 창도 없어 더욱 답답했던 테스크룸. 출근해보니 새로 부장님 한분이 오신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누구지? 그 저번부터 온다던 e머시기 부장인가?”

한국말 잘 못하는 교포 출신의 부장 한명이 온다는 소문은 끊임없이 있었다. 사실 우리 태스크팀원들에겐 모두 귀찮은 일일뿐이었다. 태스크 시작후 한달동안은 리더도 정해지지 않았었다. 리더 후보자들이 다 고사하여(신사업 태스크는 누구나 꺼려하는 태스크다) 우여곡절끝에 선정된 리더는 교육차 해외에 있다 최근에 귀국했었다. 그나마도 다른 사업그룹의 그룹장인 탓에 낮에는 해당 그룹일을 보고 밤에 와서 우리에게 보고받는 상태였다.

딱히 답이 보이지 않는 태스크속에서 점점 지쳐가던 우리들에게 조직적으로 점점 복잡해지는 건 원치 않는 상황이었다. 기존 리더에게 보고하는 것도 부담인데, 부장님이 한 분 더 오시면 일은 더 늘기만 하는 거 아닌가.

그래도 부장님 한 분이 더 오신다니, 그냥 우리가 쓰던 평상을 같이 쓸 순 없기에 급히 총무팀에 연락하여 책상 하나를 더 구했다. 지금의 그룹장님의 얼굴을 처음 뵌 건, 다른 건물에서 구해오느라 흠뻑 비에 맞았던 그 책상을 휴지로 열심히 닦을 때 였다.

“내가 재입사 후 젤 첨한 일이 뭔지 기억나냐. 레이 아웃하고 짐 나르던 거자나.”

역시 또 술자리에서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이야기가 첫 날 우리가 한 일이었다. 6명의 태스크 팀원과 2명의 부장이 생활하기에는 룸이 턱없이 부족했기에, 그나마 아주 조금 넓었던 옆 방으로 이사를 했다.부족한 공간에 어떻게든 효율적인 자리배치를 하기 위해 이리저리 머릴 굴렸었다. 결국 그 날 하루 일은 거의 못했고 비 오는 날 먼지내며 책상 옮긴 것이 전부였다.

오해는 금방 풀렸다. 그룹장님의 인상은 누가 봐도 ‘된장’ 스타일이었다. 여기서 된장이라함은 된장남의 그것이 아니라, 버터와 대비되는 토종이라는 뜻의 된장이다. 우리가 소문으로 들었던 그 교포부장님은 전혀 다른 분이었다. 하지만, 진짜 오해는 풀리지 않았었다. 그 분의 수수한 외모, 약간 어눌한 말투에 우린 착각을 했었다. 약간 트랜디하면서 팬시한 인더스트리를 다루고 있었기에 이 분은 그런 분야와는 무관한 분이라 선입견을 가진 것이다. 사회에 진출한 후로 각종 쪽팔린 경험을 다 겪어봤지만, 지금 생각만 해도 귀가 빨개지고, 얼굴이 후끈거리는 기억이, 우리가 그룹장님을 앞에 두고 해당 인더스트리에 대해 가르쳤다는 것이다. 겨우 몇 년 관심가지고 지켜 본 지식과 몇 개월 태스크 경험을 가지고 말이다. 우리 그룹장님 참 성격도 좋으셨지.

아마도 본부장님께 중간 보고 드리고 난 직후 였던 거 같다. 우린 분명히 태스크의 목표가 향후 사업본부의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리라 믿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보수적이며 완고한 top management의 생각을 바꾸기엔 역부족이었다. 우린 피보고자들이 자리를 뜬 회의실에서 나오질 못했다. 보고준비에 지쳐 있던 채로 ‘우리 회사가 뭐 그렇지..’ 서로 자조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 때였다. 그동안 쭉 우리가 어떻게 하는지 지켜만 보시던 그룹장님께서 매직을 들고 보드앞에 서신 것은.

“여러분, 우린 앞으로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칠판위에는 전체 인더스트리의 밸류체인이 그려졌으며, 향후 우리의 ‘하고 싶음’과 현재 우리의 ‘할 수 있음’의 괴리가 정의되었다. 그럼으로써 자연스럽게 그 괴리를 메우기 위해 이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성’이 도출되었다. 우리가 그동안 어디서 헤매고 있었는지, 얼마나 말도 안되는 삽질을 하고 있었는지가 그 보드속에 고스란히 표현되어 있었다.

처음이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말 그대로 ‘개안’의 느낌을 맛본 것은. 그룹장님의 말씀이 끝난 후에도 우린 가슴이 계속 뛰었다. ‘리더의 역할은 조직에 비전을 제시하고, 조직원들의 행동에 일정한 방향성을 부여하는 것’이라는 말은 그저 교과서에서나 있는 표현인 줄 알았었다. 사실, 그 날 느꼈던 흥분과 감동이 인더스트리와 전략에 대해 눈을 떳다는 느낌때문인지, 진심으로 믿고 따를 수 있는 리더를 만났다는 기쁨때문이었는지는 분명하지가 않았다. 어쨋든 우린 그 날로 그 분을 우리들의 진정한 ‘리더’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오해는 다 풀린 것이 아니었다.

회사의 인사평가 및 조직이동엔 그다지 유쾌하지 못한 관행이 있다. 조직이동자의 인사평가가 불리해 지는 것이다. 어차피 평점에 대한 쿼터는 정해져 있으니 이젠 더 이상 ‘내 새끼’가 아닌 사람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것이다. 특히나 이동시기가 인사평가 시기라면 가장 최악이다. 불행히도 우리 태스크팀원들의 ‘결정의 시기’가 딱 그 때였다.

태스크 활동후 신사업 전개가 결정되었기에 이제 해당 사업을 책임질 정식 조직이 필요해 졌다. 1차 리쿠루팅 대상은 물론 기존 태스크 팀원들. 기존 조직으로 복귀하느냐 새로운 조직의 창립(?) 회원이 되느냐의 결정의 순간에 addict.군과 그의 후배 D군의 고민은 컸다. 일단 생각하기에는 옮기는 것은 부담이 컸다. 늦은 나이에 사회에 나온 올드 루키 addict.군은 가뜩이나 직급도 낮은데 평가까지 잘 못 받으면 향후 진급에 미칠 악영향이 눈에 보듯 선했다. Addict.군을 이 회사로 데려온 후배의 경우는 상황이 더 심각했던 것이 그 해가 바로 진급년이었기에 평가가 나쁠 경우 바로 진급누락이었다.

둘이서 이런저런 고민을 했지만, 결론의 기준은 결국 사람이었다.

“내가 회사생활 얼마 안 해 봤지만, 이런 기회 별로 없을 거 같아. 믿고 따를 수 있는 리더밑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

“그건 그래요, 형. 에이 몰라 몰라. 걍 하자구요.”

기존 태스크팀원 6명 중 5명이 같은 선택을 했다. 본부내에선 작은 파문이 일었다. 이렇게 대다수가 자발적으로 신사업 조직을 선택한 경우는 전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addict.군을 제외하곤 다들 기존 조직에서 일 잘하기로 소문난 멤버들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놀라움은 더 컸다. 다른 분들은 기존 조직으로 복귀하라는 유무형의 압력을 다 이겨내고 조직이동을 이루어 냈다(여기에는 또 별별 스토리가 다 있지만 조직내부이야기이기에 넘어가도록 하자). 모두의 선택에는 리더에 대한 기대와 신뢰가 깔려 있었다. 이런 리더 밑에서 일할 수 있다면, 이 정도의 고난(?) 정도는 이겨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우린 여전히 오해를 하고 있었다.

정식 조직 발족을 위해서 외부영입이 활발해 졌다. 최근 높아진 회사의 위상을 반영하듯 놀랄만큼 high profile의 분들이 합류하기도 했고, 언뜻 봐서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듯한 background의 분들도 합류했다. 그러나, 꽤 높았던 경쟁률(얼핏 듣기에 몇배수가 넘는 사람들을 인터뷰하셨다고 한다)을 뚫고 리더에게 선택된 사람들은 금방 본인들의 진가를 발휘했다. 전혀 다른 background를 가지고 있었기에 우리가 고개를 갸웃했던 분조차 정말 빠른시간에 해당 인더스트리를 catch up한 이후 전략을 리드할 수 있는 역량을 보여줘 모두를 놀라게 했다. 재미있던 것은 외부영입되어 오신 분들 역시 기존멤버들과 마찬가지의 오해를 리더에게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오해라는 것은 별 게 아니었다. 우린 모두 우리의 리더를 ‘과소평가’했었다. 이정도의 리더라면 이런저런 리스크 를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정식 조직 발족이후 진짜 리더로 모시고 난지 한달이 지나고 나서야 우린 리더에 대해 제대로 평가를 할 수 있었다. 처음 예상했던 ‘이 정도’의 3배는 뛰어난 사람이었다.

먼저, 전략기획 스텦으로서 최상급의 문제해결능력의 소유자였다. 뭐 이런저런 일로 인해 메이저펌 컨설턴트를 접했을 때도 별 감흥이 없었지만, 리더에게 문제를 가지고 갈 때면 항상 기대가 되었고 그가 해답을 이야기할때면 마치 고3수험생이 족집게 과외선생의 말을 받아적듯 열심히 기록하게 되었다.

처음 우리가 감탄했던 인더스트리 전문가로서의 인사이트도 다 보여준 것이 아니었다. 전체 밸류 체인을 조감하면서 회사내에서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이슈를 제기하고 대안을 마련해 나갔다.

그렇다고 단순한 책상물림도 아니었다. 컨설턴트들이나일반적인 전략기획스텦들이 신사업을 진행할때는 보통 가장 앞단의 전략만 세팅해두고 그 뒤의 실행단은 사업부에 맡기는 것이 상례였다. 그러나, 리더 앞에서 요정도 해본 것 가지고, ‘신사업 좀 해봤다’라고 이야기 했다간 혼난다. 리더가 이야기하는  ‘신사업 한번’은 초기 전략 수립 및 사업기획을 한 이후, 본인이 사업기획할 때 적었던 초기 매출 목표를 달성해 내는 것을 말했다. 이 한번을 위해 때론 양아형님들에게 협박받기도 했으며, 검찰청과 경찰서를 들락날락 하기도 했다. 이런 고단한 ‘실행’의 경험이 리더의 평소 지론인 ‘실행을 위한 전략’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그 뿐인가. 리더는 누구보다 고객지향적인 사람이다. 이 역시 갖은 종류의 고객 클레임을 온 몸으로 감당하면서 평범했던 점포를 전국 1등으로 만들어냈던 경험에 근거하고 있었다. 언젠가 1등의 비결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정말 고객의 눈높이로 사고하는 것이 이런 거구나 하고 감탄을 했었다.

하지만, 우리가 가장 감탄했던 부분은 바로 내부고객커뮤니케이션이었다. 누가 addict.에게 대기업 생활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역량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바로 내부커뮤니케이션역량이라고 답하고 싶다. 정말이지 대기업의 커뮤니케이션의 복잡도는 경험해보지 않고선 알 수 없다. 어떤 일을 추진함에 있어 담당자를 찾는 것이 일의 절반이다. 무엇을 누구에게 언제 이야기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고차방정식을 푸는 것 이상의 머리굴림이 필요하다. 더군다나 밸류체인 전반을 컨트롤해야….

(이 역시 미완성 포스트로 남겨진다. 역시 글을 시작했으면 그 자리에서 끝을 봐야 한다. 2010년 5월 23일 저장된 글이다)

북경 공항 블루스

2010/05/22

북경공항 블루스 

발표결과는 항상 예측불가다. 4개 agenda중 첫번째는 정말 간단하게 넘어갈 줄 알았다. 왠걸, 전체시간 2시간 중에 1시간 반을 첫번째 주제 토론하는데 썼다. 그것도 단순한 토론이 아닌, “챌린지”가 반이었다. 다 지원해 줄테니 걱정하지 말라던 모부장님의 뒷통수는 특히 뼈아팠다. 

중국의 말그대로 “지랄맞은” 특수성에 치를 떨며 겨우 워크샾을 마친 시간이 오후 2시. 자료만드느라 시간이 없어 호텔에서 나올 때 체크아웃도 못했기에 먼저 나와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한게 2시 반. 오후 6시 10분 비행기라서 조금 이른감이 있지만 다시 법인 들어갈 시간은 안되서 바로 공항으로 갔다. 

한산한 데스크에서 여유롭게 체크인을 하고 들어가서 책 좀 읽다가 가면 되겠지…했던 나의 소박한 바램이 깨지기 시작한 건 내 이름이 검색안되면서 부터였다. 아직 말단대리주제에 밑에 사람들 데리고 일하다보니(생각해 보니 겨우 작년 10월부터였으니 얼마되지도 않았다. 보직이 없으면 부장도 실무뛰어야 하는 회사분위기상 말단주제에 이런 거에 익숙해지는 건 독인데…) 출장일정을 직접 안 챙기다 보니 비행기편명을 몰라 여기저기 데스크를 헤매다 노트북을 열어 최종확인.. 

비행기표가 내일 6시10분으로 예약되어 있었다. OTL 

 

분명 시스템엔 오늘로 넣었으나, 워낙에 출장일정이 다이내믹한거로 악명이 높은지라 항공편 담당인 황대리님이 시스템을 안보고 동행인 이과장과 같은 스켸쥴로 예약을 해버린…OTL 

딸랑 하루짜리 출장이라 회사 로밍폰도 없는 상황에서 비싼 개인폰으로 상황을 파악했으나, 이미 시간이 지나 한국에서는 티켓 교환이 불가능해졌다. 현장 데스크에서도 티켓 변경이 어렵다고 하여 나의 유일한 옵션은 9시 15분 대한항공편으로 바꾸는 것(6시 10분편은 남방항공과의 공동운항편). 

황대린 무척이나 미안해 했으나, 평소에 워낙 많이 도와줬고 최종적으론 발권사항 확인하지 않은 내 책임이니 뭐라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아..3시간을 더 기다려야 하는군..OTL 하면서 일찍 체크인이나 하려고 대한항공데스크로 향했다. 

아직 출근도 안한 대한항공 직원들을 기다려 체크 인을 하…려는데.. 

“지금은 6시 부산비행기만 발권하고, 9시 15분 인천행은 2시간 후에 오셔야….” 라는 대한항공 직원의 서툰 한국어. OTL OTL 

아 오늘 정말 되는 일이 없군..하는 마음에 얼굴을 구기며 지나가는데 어디선가 아리따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문제 있으신가요?” 

찌푸린 얼굴로 돌아봤을 때, 오! 정말 눈에 확 띌만한 미모의 아가씨가 또박또박한 한국어로 물어봤다. 간단히 사정을 설명하니, 1시간 후에 오면 자기가 체크인을 해주겠다고 차분히 말해주었다. 한국분이냐고 물어보니 대한항공 본사 파견직원이라고 한다. 뛰어난 미모에 친절한 고객응대, 유창한 중국어…정말 재원이라는 표현에 딱 어울리는 아가씨였다. 우울한 오늘 일정에 반전인가..결국 이 모든 시련과 삽질이 이 아가씨와의 인연을 위해서였나..그래 어떻게든 이 아가씨를 제대로 꼬셔서………………………….. 

처남이랑 소개팅 시켜줘야지…쿨럭 

하는 망상을 맘속에 품고 1시간후를 기약하며 화장실을 갔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3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 건 억울했다. 도착하면 집에 가는 버스도 끊길 시간인데…말 통하는 사람도 있겠다…어떻게든 다시 티켓 변경을 시도해 볼까?

마음을 굳히고 다시 미모의 이xx양을 찾았다. 전체 스토리(예약이 잘못되서 블라블라..어떻게든 6시 10분 비행기를 타고 싶다..도와주세요 흑흑..)를 말하고 도움을 요청하니, 한국과 통화할 수 있게 핸드폰도 빌려주고, 본인이 직접 남방항공에 가서 알아봐주었다. 아 이런게 고객감동 경영이지. 직업인으로서의 자세겠지만, 정말 놓치기 아까운 아가씨따. 기필코 인연을 이어가서…. 

처남에게 소개시켜 줘야지…쿨럭 

 

30분 정도 한국 여행사와 남방항공을 들쑤신 결과, 최종적으로 6시 10분 티켓을 거머쥘 수 있었다. 아싸. 황대리는 자기 잘못이라며 재발급료를 개인 돈으로 처리했으며, 이xx양은 30분 이상 내 일만을 처리해주었다. 처남과의 소개팅은 왼손에 낀 반지를 보아 힘들 가능성도 있으니 OTL 대한항공 게시판에 칭찬이라도 남겨야 겠다. 

그나마 좋아진 기분으로 입국심사를 마치고, 비행기 기다리는 동안 어제 다운받은 NBA WCF 1차전을 보다 비행기에 탑승했다. 요새 갑자기 필 꽂힌 선생님의 “도마복음한글역주2″를 읽으면서 비행기 이륙을 기다렸다. 이제 2시간만 지나면 한국이다..책도 재미있으니 금방 가겠다…하며 남은 부분 중 거의 1/3을 읽었는데….. 

응? 비행기가 안 떠! 

 

잠시 늦어진다는 방송을 들으며 계속 책을 읽었다. 거의 책을 다 읽었을 즈음 정신 차려보니 

여전히 비행기가 안 떠! 

 

현재 인천공항에 짙은 안개로 안개가 걷혀야 출발할 수 있단다. 뭐 언젠간 가겠지. 여유있는 마음으로 책을 다 읽고…그래 오랜만에 블로그에 글이나 써야겠다. 지금 읽은 선생님 책의 감동을 정리해둬야지. 안드로원으로 거의 a4 2장 정도를 썼다. 아 앞으로 나는 “출장문학”이라는 장르를 개척해야 겠다..ㅋㅋ하고 있다 다시 정신 차려보니 

2시간이 넘었는데 여전히 북경공항…OTL 

 

서서히 승객들의 동요가 커지기 시작했다. 먼저 인천에서 트랜스퍼해야 하는 승객들이 불안해 했고, 한국인들은 직접 인천공항에 전화해서 진짜 안개때문인지 확인했다. 남방항공 승무원들 중엔 한국어 잘하는 사람도 없었고, 영어는 더 개판이었기에 자연스레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한국인 커뮤니티(?)가 형성되었고 여기서 수집된 정보로는 당분간 인천공항 안개가 풀릴 기미가 없으며 내일 오전도 불안하다는 것이다. 

이제 오늘 한국을 못가는 건 확정 분위기였고 문제는 후속조치였다. 차라리 상황이 안되면 빨리 항공사측의 의사결정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승객과 승무원간의 대치상황(?)은 1시간이나 더 기다린 후에야 풀렸다. 나온 시간이 9시. 비행기안에서 3시간 넘게 있었..OTL 

비행기에서 나오니 옆 게이트엔 내가 변경했다 취소했던 9시 15분 대한항공 비행기가 서 있었다. 취소 안했으면 여러 사람 안 괴롭히고, 또 좁은 비행기안이 아니라 넓은 데서 기다렸을 텐데…에휴 뭐 그래봐야 어차피 오늘 못 가는 건 마찬가지인 걸 뭐…. 

응? 대한항공은 떠?!?!?! 

 

한국인 커뮤니티는 급흥분모드로 바뀌었고, 졸지에 커뮤니티 대표 겸 통역이 된 여학생은 엄청난 기세로 따졌다. 

결국 확인된 사실은 대한항공은 인천이 아닌 김포로 가는 것으로 목적지를 변경했으나, 남방항공 비행기는 김포 취항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아….난 결국 황대리의 협조와 미모의 이xx양의 헌신적인 도움에 힘입어 손 안에 다 쥐었던 한국행 비행기표를 떠나보낸 것이다.

모사재인 성사재천. OTL

 

남방항공측에선 호텔 제공에 다음날 출항을 약속했으나, 끝까지 출국시간을 컨펌하지 못했다. 대책없이 마냥 기다릴 수도 없고, 더 이상 말도 안 통하며, 불안불안한 중국비행기 타기도 싫어 그냥 출장을 하루 연장하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통역담당이 되버린 여학생은 여러 승객들의 요구를 일일이 통역해 주며 한국인의 권익(?)을 보호하였다. 하도 고생을 많이 하길래 기특해서 명함을 건네며 한국에서 연락하라고, 밥이나 한끼 사주겠다 했다. 

“어머 저 이번에 여기 원서넣다가 떨어졌는데 ^^;;” 

 

역시 우리회산 사람보는 눈이 없군…오늘 활약상(?)을 봤다면 누구라도 데려가려 했을 텐데..특히 중국어로 따질 때는 완전 장군감이다가 애인한테 전화할 땐 열나 간드러짐 + 연약함 * 100 모드로 변신하던 모습이 인상적이었… 

최종적으로 티켓문제를 정리하고 이과장을 다시 만난게 11시. 이렇게 해서 8시간의 북경공항 블루스는 끝이 났다. 돌아간 호텔에 방이 없어 이과장 방 바닥에서 잠이 들게 된 것은 그저 화룡정점(?)이었을 뿐이다.

첫 블로깅

2010/03/13

워드프레스 계정열고 첫 포스팅. 개점휴업상태인 이글루스를 나두고 또 새로운 블로그를 열었다. 안드로-1를 지른 가장 큰 이유중에 하나가 모블로깅인데 가능한 어플이 워드프레스밖에 없었다. (혹시 이글루스에서도 가능한건지?)

트위터, 페이스북, 모블로깅 이 3가지를 얼마나 유용하게 활용하냐에 따라서 이번 지름의 정당성(?)이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Hello world!

2010/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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